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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일

나대로 살거야

소월로 시절 사진을 뒤지다 듣똑라에 나갔던 날 행사 사진이 우연히 떴다. 헤어스타일이 근사해보였다. ‘짧은 머리를 다시 할까’의 무한고민루프에 또다시 빠졌다.

최근에 친구에게 ‘넌 진짜 머리카락을 그냥 두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가 싶어 곰곰이 곱씹어보니 정말 머리를 길렀다, 잘랐다, 볶았다, 폈다 하고 살았다. 긴 머리는 대학교 1학년 이후로 해본 적이 없지만, 중단발 기장에서 일반 남성컷보다 더 짧은 스타일까지 고루고루 바꾸어 가면서 은근히 많이 해봤다. 이것저것 해보니 좋은 점은 확실히 잘 어울리는 머리와 확실히 잘 안 어울리는 머리를 알게 된 것이다.

6살쯤 엄마가 아주 파격적으로 내 머리를 자른 적이 있었다. 어릴 때만 하더라도 시골서 사는 여자 아이가 숏컷을 한다는 건 잘 없는 일이어서, 유치원에 가니 머스마같은 내 헤어스타일을 보고 온 사방에서 입을 댔다. 유치원 끝나고 놀이방이었나 어딜 갔는데, 선생님, 친구 얼굴까지 모두 잊어버려도 그 복도만큼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한참을 복도에서 서성였던 거다. 어린 마음에 견디기 힘들도록 심장 뛰는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울에 비친 짧고 동그란 머리가 귀엽고 몹시 만족스러웠다.

지금까지도 숏컷을 제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는 숏컷은 픽시컷인데 여자 숏컷 중에서도 정말로 짧은 머리다. 애매하게 초코송이처럼 동그란 머리보다 더 세련되고 쿨해보이는 그 머리가 꼭 해보고 싶었는데, ‘에라이 어차피 회사도 내 회사고 눈치 볼 것도 없는데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몇년 전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그렇게 짧은 머리를 해봤다.

당시 연희동에 이제 막 연 카페가 하나 있었다. 강아지 동반이 되는 곳이라 자네를 데리고 자주 그곳에 들렀다. 주인 아저씨는 거의 항상 커피를 사가는 손님들과 스몰톡을 시도하던 분이었고, 당시의 난 아끼던 동료를 해고하고 유령처럼 떠다니며 은둔 모드로 진입하던 중이라 이 아저씨와의 1분 남짓한 소통이 유일한 사교 채널이었다. 이 커피 한 잔이 하루 중 제일 큰 기쁨이기도 했다.

“숏컷 평생 하셔야 겠어요.”

그 말을 듣고는 마음으로 ‘와, 나 숏컷 잘 어울리나봐!’ 하고 행복했지만, 막상 무슨 말로 그 칭찬에 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고장 나 있다 커피만 받아들고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그때만 하더라도 너무 짧은 머리가 아직 내 머리 같지 않아 어색할 때가 있었는데, 남들 눈에 괜찮아 보인다니 안심이 됐다.

숏컷으로 인한 에피소드들이 이렇게 예쁘기만 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한번은 길가다 술 취한 아저씨에게 습격을 당했다.
“야, 이것도 남자냐?”
내가 곱상한 남자인줄 알았던 모양인지 시비를 걸어왔다.
“뭐라고?”
‘이것도’에서 이미 열받은 내가 반사적으로 소리쳤더니, 여자 목소리에 놀랐는지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날 내 행색이 그렇게 남자 같은지 확인하려고 한참을 검은 유리창 앞에 서서 봤다. 검은 롱패딩에 목도리까지 하고 서 있었으니 확실히 남녀구분이 용이한 복식은 아니었다. 

“다 필요 없고. 저 새끼가 미친놈인 거지.”

여러모로 그 인간이 문제적인 상황이었지만, 한켠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여자가 머리 짧으면 사는 게 피곤하구나.

한번은 증명사진을 찍으러 간 스튜디오에서 만난 사진사였는데, 머리 짧은 여자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맥락의 이야기를 1절도 아니고 3절까지 하는 게 아닌가. 사진에서 나의 짜증이 묻어나와 쓰지도 못했다.‘여자애가 머리가 왜 짧냐’류의 피로감은 점점 누적되다가, 오랜만에 본가에서 함께 밥을 먹던 아빠가 던진 말 한 마디에 KO당했다.
“왜. 여자로 사는 게 그렇게 피곤하냐?”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데, 짧은 머리를 하면 이렇게나 피로해진다니 딜레마였다. 일단 머리가 턱선을 넘어 길어지기 시작하면 얼굴이 답답해보이고 이미지가 촌스러워졌다. 적당히 짧은 단발에서 히피펌처럼 과감한 컬을 넣으면 머리카락끼리 서로 꼬이다 줄줄이 빠져 원형탈모가 올 것 같았고, 대신에 앞머리를 내고 머리를 깨끗하게 펴면 원래 내 나이보다 너무 어려보이고 일본 아이 같은 귀여운 느낌이 도드라져서 싫었다. 어울리고 안 어울리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둔다면 짧은 머리가 정답이었다. 긴 머리가 주는 정형화된 아름다움보다 짧은 머리가 주는 입체적이고 뻔하지 않은 세련됨이 더 내가 입고 싶은 이미지였다.

반면 머리를 기르면 사는 게 편해졌다. 여성스러운 옷을 입지 않아도 여성스러움이 묻어나와 사람들이 나를 분류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무엇보다 눈에 띄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억에 안 남지도 않는 이미지는 적당했다. 적당함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디 가서 내 직업만 물어도 뭐라 답할지 고민이고, 일하는 분야에서도 늘 설명하는 게 너무 힘든데, ‘설명하지 않아도 설명되는 편안함’은 당시 나에게는 무척 귀했다.

작년에 그렇게 머리를 길러 보려 애썼던 것도 같은 맥이었다. 지난 여름, 옷장을 탈탈 털어 사계절 옷을 모조리 바닥에 놓고 하나씩 정리해보니 이건 뭐 러쉬 매장이나 다름 없었다. 어찌나 채도가 높은 원색의 옷을 샀는지, 위아래로 어떻게 입으면 좋겠다는 생각 따위 하지 않고 아이가 공주 옷 고르듯 본능적으로 사댄 것이다. ‘사람이 색있게 살아야지!’ 그런데 막상 센터를 운영해보니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차분한 이미지와 내가 좋아하는 선명하고 알록달록한 이미지에 괴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수업을 안내하는 방식에서 오는 신뢰에 비해, 그 사람의 행색과 이미지가 주는 신뢰가 얼마나 빠르고 강력한지를 느낄 일도 많았다. 그때부터 원색의 옷을 의도적으로 점점 안 입기 시작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머리도 기르기로 한 거였구나, 최근에 알았다.

이걸 알게 된 건 요즘 나의 테마가 ‘내 색깔대로 살겠어’로 변하면서 다시 머리를 자르고 싶은 욕구가 치고 올라온 탓이다. 무슨 일을 해도 ‘내가 충분한가?’ ‘이걸로 충분한가?’ 이런 질문이 자동반사처럼 튀어나오는 성격상, 끊임없는 자기검열과 분명한 주관이 자꾸만 부딪혔다. 두 개의 압력이 너무 강해서 악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고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어쩌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헤어스타일로 표가 났던 게 아닐까? 내 머리 스타일의 변화는 나에게 잘 맞고 내가 좋은 삶을 살 것인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설명 없이도 받아들여지는 삶을 살 것인가라는 고민과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었다.

머리가 짧아질 때면 주변에서 심경의 변화를 묻는 것도 꽤 괴로웠는데, 오히려 이렇게까지 선명해지니 머리의 변화가 촌스러운 선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 수요일쯤 ‘내가 좋은 거, 나한테 잘 어울리는 거, 그걸로 할래!’ 그렇게 결정하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미용실을 예약했다. 

“저.. 이게 자를게요.”

헤어 샘은 자꾸만 머뭇거리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왜 선생님이 떠세요.”

하고 웃고 말았지만, 나도 속으로 머리를 하면서 이렇게 비장한 마음이 든 건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머리카락 뭉텅이가 바닥에 툭툭 떨어질 때마다 세상에 선전포고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나 이렇게 살 거야. 나대로 살 거야!

나를 듣기 · 길잡이 김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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