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7일
“당신의 마음에 허락되지 않는 것을 써보세요.”
어떤 사람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해 한 장도 쓰기 어려워 했다. 어떤 사람은 아주 확고하게 떠오른 두어가지 답을 곧장 써서 붙였다.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속도도, 이 질문을 대하는 방식도 모두 제각각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 질문이 가져오는 심리적 불편감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
“일을 그만 두고 싶다.”
“가족에 대한 분노와 혐오.”
“열등감과 수치심”
“질투하고 비교하는 마음”
“나는 충분하지 않아. 나는 노력해야해. 나는 어딘가 문제가 있어.”
“아무리 애써도 나는 달라지지않아. 구제불능이야.”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희망이 없다는 느낌.”
“어린 날의 어떤 기억.”
“정말로 허락되지 않는 것들은 여기에 붙어있지 않아요. 허락되지 못했기 때문에요. 나누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여기에 내가 쓰지 못했던 것을 떠올려보세요.”
다들 먹먹한 표정으로 생각과 생각 사이를 떠돌고 있었다.
“우리 마음 안에는 허락되지 않는 것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 생각이나 감정, 기억은 절대 내 마음에 머물 수가 없다고 느껴요. 하지만 시시때때로 그런 금지된 마음들이 나를 찾아오죠. 우리는 빗장을 잠그고 모르는 척해요. 하지만 그 마음들은 거기에 있고, 잠긴 세면대에 물이 넘치듯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넘쳐버리죠. 우리는 당황해요. 이 마음이 왜 여기 있나 하고. 이런 식으로 터져나와버렸지? 하고요. 온 세상이 쏟아진 감정으로 축축하죠.
예쁜 마음을 허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건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를 부정하지도 않죠. 오히려 더 나은 존재로 나를 느끼게 해요. 나의 추구미에 부합하죠. 그런 나를 더 공고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못나고 어설프고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마음은 어떤가요. 그 마음도 들어줄 수 있나요.”
우리는 나를 듣기 위해서 이 훈련을 하고 있지만, ‘어떻게 나를 듣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뒤집어 생각해보는 것도 유익할 수 있다. 나를 듣지 않기 위한 전략과 듣지 않을 때 무엇이 좋은지 자유롭게 써본다.
나를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듣지 않으면 뭐가 좋을까?
표현의 자유는 아름답지만은 않다. 어쩌면 정말 듣고 싶지 않은 혐오나 차별의 표현까지도 허용된다는 것이다. 듣기도 마찬가지다. 나를 듣는다는 건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나의 면면만 듣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불편해 하는 면, 찌질하고 수치스러운 면도, 내가 금지한 면도 허용한다는 의미다. 이 질문을 통해서 들리지 않던 마음도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내 마음에 허용되지 않은 마음이 있다면?
“자유로움이 어떤 느낌인 줄 알아? 원래 너를 무섭게 하던 게 더이상 널 무섭게 하지 않는 거야.”
나를 듣기 · 길잡이 김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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