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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4일

각성

문화예술교육자들이 모이는 연수에 다녀왔다. 질문을 하나 들고 가야 했고, 수년간 쥐고 있던 질문을 어렵지 않게 써낼 수 있었다. "나를 듣는 시간의 가치와 의미는 뭘까?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한 교육자의 질문이 포스트잇에 쓰여 내게 돌아왔다.

"소통은 늘 양방향이지 않을까요?"

B2C 사업가의 위치에서는 고객의 니즈를 포착하고, 설득하고, 만족시키는 데 책임을 지지 않으면 매출과 생존이 흔들린다. '소통은 양방향'이라는 말은 다소 낭만처럼 들렸다. 그런데 이 포스트잇 한 장이 자꾸 아른거렸다. 화장실에 가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머릿 속에서 포스트잇이 팔랑거렸다.

컵에 남은 물을 비우는데 그 질문의 실체를 알 것도 같았다. 우리가 살아온 물이 다른 것이었다. 내가 던지는 질문도, 그들이 내 질문에 반응하는 방식도 우리가 각자 살고 있는 분야, 그 안에서 따르고 있는 규칙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의 피로감은 사업가의 포지션에서 치유와 문화예술교육을 다루었기 때문에 발생했던 게 아닐까. 사업의 철칙(고객 설득, 매출, 서비스의 완결성과 친절함)과 내면 탐구의 철칙(자유, 여백, 본질 탐구, 학습)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마찰열을 일으켰던 걸까? 창작자들의 물에서는 어떤 게임의 법칙이 작동하는지 궁금해졌다.

치유나 교육 서비스업은 어디까지나 서비스의 틀 안에서 "당신의 변화를 책임지겠다"는 의도가 개입하기 쉽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는 참여자나 학생이 아닌, 사용자(user)를 대한다. 그러나 예술에서는 "내 안의 질문을 세상에 던질 테니,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는 양방향의 여백을 둔다. 예술가는 완성된 답을 주입하지 않는다. 설득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단지 상대방이 스스로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을 슬그머니 내놓는다.

사업이나 기성 미디어에서 소통을 정의하는 방식은 예술 분야와는 차이가 있다. 사람들과 '소통'해야한다는 이야기는 거의 모든 사업 바이블에서도 나오지만, 그때의 소통은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를 듣고 개선, 변화시켜보라는 의미에서 였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완성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배우고 장려받은 소통은 내가 있고 당신이 있는 소통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은 뭘 원할까?"에 맞춰 자신을 변형하는 과정에 가까웠던 걸까?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추측하며 맞춰가는 동안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가장 중요한 진실성과 고유함이 희석되었는지도 몰랐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지난 주의 기억들이 휘몰아쳤다. 취약해진다는 것은 열리는 상태로의 전환이었다. 변화와 각성의 가능성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안다고 혼란과 두려움 속으로 내몰리는 것이 미세하게라도 유쾌해지지는 않았다. 예술가이자 예술교육자인 이들과의 만남은 민물에 사던 물고기가 바닷물을 경험하는 것처럼 이제껏 살아온 물을 체감하게 하는 일이면서, 색다르고 숨이 안 쉬어질 듯 두려운 경험이었다.

금지된 질문들이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올랐다. 어떻게 설득할까라는 질문을 내려놓는다면 어떤 질문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새로운 물에 살아본다면 어떨까.

치유 분야에서 사업가가 된다는 것

영은과 나는 오늘도 다른 아침과 다를 바 없이 밥을 먹고 산책을 다녀와서 각자 할 일을 했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영은이를 보면서 새삼스레 우리의 특성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도, 실은 환경에 대한 자연스러운 적응 방식이었을지 궁금해졌다.

"대체 왜 우리는 비장한 문제의식을 갖고 일했을까?"

늘 영은과 내가 세상을 구하려는 듯 너무 비장하게 일해온 것에 대해 물음표를 갖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 개인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보다 더 비장한 마음으로 일해온 영은을 보고는 난 너처럼 대단한 사명이 있어서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우겼다. 실은 이 분야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활동가가 되게 하는 측면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우리 주변의 심리 분야 크리에이터나 제도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치유 분야의 사업가들은 조금씩 닮은 구석이 있었다. 대체로 무거운 문제의식을 갖고 일하고 있었고, 우리들끼리만 공감할 수 있는 어떤 비장함과 억울함이 버무려진 독특한 감정선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상담심리사나 임상심리사들에게는 좁지만 돌아갈 (규정된) 일터가 있었고, 학계에 남은 이들은 학계가 있었고, 예술가는 예술가라서 시장을 넓히려고 시도하거나 굳이 가치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예술교육자들에게는 공공성이라는 명분과 지원사업이 있었다.

우린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시장을 넓히고 서비스로 유입될 수 있게 직접 설득해야 하는 B2C사업의 속성 상, 우리는 내 손에 있는 물건과 서비스를 팔고 싶었을 뿐인데 정신 차려보면 어쩔 수 없이 더 큰 공동의 선결과제인 정신건강관리의 필요성에 대해 자꾸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와 시장 사이 마케팅처럼 보이는 메시지들이었지만, 그렇게 내는 목소리는 우리의 서비스나 제품만을 향해 있기 보다는 심리와 건강 상식의 전달에 가까웠다. 하지만 영리 사업이란 형태로 인해 공공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제도권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이 좁은 시장 안에서 자기들끼리 밥 그릇 싸움은 계속 되고 있었고, 권역 다툼 속에서 저 밖으로 밀려나 있는 동안 전문성의 인정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게다가 왈이네의 시작점은 미디어였다. 우리는 둘다 커뮤니케이션 전공생으로, 미디어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다. 그 속에서 생각했고 교류했고 무엇보다 키워졌다.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할 것인가,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해왔다는 사실은 아주 특정하고 중요한 맥락이었는데 너무 당연해서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설득해야 하고 전달해야만 한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 이제껏 소통의 결과를 오로지 내 몫으로 책임지려고 애써왔다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설득하고 전달하려는 기성 미디어의 일방향적 태도,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며 느끼는 문제의식, B2C 사업가의 밑바닥 생존 본능, 그리고 자기이해라는 눈에 보이지 않고 변화를 입증하기 어려운 주제. 이 네 가지가 사방으로 잡아당기는 시간이었다.

"저는 사실 이런 얘기가 너무 지겨워요."

이번 연수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건 한 예술 행정가가 정말 지겨운 표정으로 이 말을 꺼냈을 때다. 가슴에 세찬 물줄기가 시원하게 통했다. 마음 속을 소리쳤다.

"저도 지겨워요!"

나도 어느샌가 지금 내 삶이, 내 일이 지겨웠다. 질문을 더 파면 팔수록, 붙들면 붙들수록 막다른 길로만 느껴졌다. 시간과 에너지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설득하는 것이 지겨웠고, 우리끼리 모여서 구조나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지겨웠다. 다르게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B2C 사업을 내려놓고 싶다. 다른 구조 속으로, 다른 환경 속으로. 내 안의 새로운 부분에 밥을 주고 물을 주는 곳으로, 내가 가야겠다. 다시 시작해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좋아하기 위해

이제껏 해온 일들은 어느 시점부터는 치유 서비스라고 부를 수 없었는데,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나부터도 이름을 모르겠는 느낌이었다. 이제 보니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언어로는 예술치유교육에 가까웠다. 이곳에 와서 사람들과 대화 나누면서 그동안 말도 안 되는 일을 말이 되게 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이 예술치유교육 분야에 돈을 내고 찾아오게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해줬다. 몇몇 선배들은 맨몸으로 사업을 일구어 왔다는 것은 정말 잘해왔다는 증거라고 격려해줬다. 그랬지. 그 시간을 견디며 강해졌다. 내가 고릴라였다면 가슴을 한참 두드렸을 것이다. 그런 기분이었다.

출근 전 바닥에 뒹굴며 책 <계속 쓰는 법>을 읽었다. 이 부분이 좋았다.

”이 책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이 질문이 기준이다.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부터 하는 말을 명심해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당장 그만두지 말고 조금만 더 해라. 하고 있는 일이 없다면 일부터 구해라. 돈을 모아서 제작비를 마련해라.
한 권이 아니라 서너 권 정도는 만들 수 있을 만큼 의 돈이어야 한다. 서너 권 중 한 권은 개정판을 찍을 가능성이 있는지 타진해 보자. 언젠가 일을 그만 두고도 계속해서 책을 만들고 싶을 때 개정판이 도움이 된다. 아마도 당분간은.
물론 이것은 나의 작은 경험일 뿐 성공 기준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 컨디션 좋을 땐 ’야, 강민선!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한 거지~‘ 할 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승리 같은 거 고 현실적인 관점의 성공 모델과는 차이가 있다. 나는 유명하지 않고 영향력도 없고 자본과 산업의 구심점이 어딘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책을 만든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계속 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이렇게 살면서 알아간다. (..) 수많은 불확실과 불안과 의심의 벽을 뚫고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그렇게 한다.“

이렇게도 살아진다는 걸 살면서 알아간다는 말에 멈췄다. 그런 식으로밖에는 배울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 시간을 생존하면서 온몸으로 배운 건 이렇게도 살아진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걸 아니까,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것을 아니까 이제는 좀더 용기내서 가보고 싶다. 해왔던 것을 해왔던 대로 하는 일을 멈추기로 한다.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도, 설득해야만 하는 구조도 모두 내려놓기로 한다. 소통의 방식을 바꾸자. 이제 사람들이 뭘 원할지를 고민하는 대신,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거기에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렇게 할 사람은 그렇게 한"다.

궁금하다.

설득하기(설득해야 했던 구조,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를 내려놓는다면, 거기에 쏟던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는다면, 이 일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당위를 내려놓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계는 생계로, 창작은 창작으로, 연구는 연구로

모든 것을 하나에 담기를 그만하기로 했다.

꼼지락PT는 천천히 쌓아갈 생업으로 삼기로 했고, 나를듣기는 개인 창작 프로젝트이자 자기학습을 위한 공동체로 두기로 한다. 나를듣기 등 홍보와 모집을 위한 모든 종류의 콘텐츠 발행을 멈출 것이다.

나를 듣는 것은 이미 나의 화두가 되었다. 그것을 주제로 만들고 연구하는 창작자이자 연구자로 전환해갈 것이다. 현상의 본질을 끝까지 파고들어 나의 정직한 화두를 세상에 내놓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조력자이자 교육자를 부캐로 삼아 일하고 싶다. 사람들을 돕고 비추고 촉진하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일이므로.

예술교육자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신 한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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