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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4일

어쩌다 개발

이제 서비스를 열 준비가 끝났다. 하나부터 열까지 눈에 거슬리는 흠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머릿속에서 '언젠가는 꼭...' 하며 만들고 싶었던 요소들을 차츰 하나씩 넣었다. 말로 코딩하는 세상이라니. 첫 투자는 가물가물하지만 3천만원인가를 받았는데, 그 중 천만원을 홈페이지 만드는 개발자에게 송금한 날, 대패 삼겹살을 동료들과 구워먹었고 나는 "대학교때 개발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하면서 자조했다. 그때가 2017년이다. 딱 10년 후 입으로 개발하는 사람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지.

몇년 전에 어떤 기사에서 한 사람이 기획, 개발부터 마케팅, 운영 등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코웃음을 쳤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없던데. 뭐 하나 하려고 해도 다 사람 손 타서 해야 하는데, 얼마나 협업이 중요한데! 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혼자서 거의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지금 개발한 것을 10년 전 개발하려고 했다면 못해도 돈은 몇 억이 들었을 거고, 그걸 논의하고 전달하는데도 어마어마한 시간을 쏟아야 했을 것이다. 정말로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 많은 것이 달라지긴 했구나. 1년 뒤에는 또 어떤 세상이 올까? 변화의 속도가 대단하다.

재작년 눈풀꽃의 인테리어를 모두 마치고, 넣어야 할 집기들을 하나씩 집어 넣고, 공간을 본격적으로 열기 전에 그렇게 공간을 꾸린 이유를 떠올리면서 하나하나 자세히 둘러봤다. 영은과 나는 말없이 누워 있었다. 가슴이 먹먹하도록 기쁨이 차올랐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건 공간이 너무 아름답다거나, 만족스러워서가 아니라, 지난 시간에 대한 애도와 축하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 시간들이 어떻게 발현될지 몰랐는데, 이런 식으로 나타났구나. 정말 반갑다. '내가 만들었다' 가 아니라 '나에게 이렇게 찾아왔구나'에 가까운 마음이었고, 지금도 그 비슷한 마음인 듯 싶다. 이 서비스는 이런 형태로 지금 나타났지만, 나타나기 전의 무수히 많은 일들이 내 가슴 속에 살아숨쉬고 있다.

쓰기 하나만 두고 보더라도 갑자기 '쓰기'가 '무슨 사업을 해볼까나' 하고 아이템 고르듯 고르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의 고민이 다음 질문을 이끌어오고 힘든 시간이 깨달음을 불러오고 또 새로운 주제들이 나타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이곳은 앞으로 어떤 곳이 될까? 우리는 얼마나 여기서 많은 숨을 고를까. 우리는 여기서 마음의 밥을 챙겨먹게될까? 사람들이 쓰면서 눈물을 흘릴까. 사람들이 몰랐던 마음을 들으며 새로운 길로 나아가게 될까. 그 길은 어떤 길이 될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가게 될까? 그건 아니겠지. 어떤 사람들을 새로 만나게 될까? 우리는 서로 언제 만나고 언제 헤어질까. 또다시 만나게 되는 날은 올까? 모든 것이 궁금한 오늘이다.

그래서 개발

뭘 살 때 내용물이 좋으면 포장이나 전체적인 브랜딩이 좀 헐거워도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내용물만 좋다면 포장과 연출의 적나라함(?)이 내겐 도리어 플러스로 작용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이런 나의 '헐거움'이 제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장점만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아니나 다를까 듣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다보니 쓰기를 돕는 요소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시기가 왔다.

처음에는 원래 하던 방식대로 구글 드라이브에서 듣기 템플릿을 제공하고, 그 안내 가이드 사이 사이를 채우며 스스로 쓰고 관리하도록 하려고 했다. 그런데 마케팅 페이지를 읽어본 영은이가 '저널링 시스템'이 구글독 문서인 것이 조금 "없어보여"서 다른 말로 쓰라고 말하길래, (조금은 부아가 치밀었지만) 시스템 구축하기라는 새로운 태스크가 생겨났다. 구글 계정을 받아서 일일이 초대하고 드라이브를 열어 내용을 읽고 관리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기도 했다.

게다가 그즈음에 원래 일에 있어선 별말 없는 오빠가 나에게 "클로드로 바이브코딩을 배워봐"라는 언질을 줬다. 시스템 구축을 고민하던 때라 그 말이 아주 크게 들렸다. 코딩을 시도해본 적 없는 건 아니지만 바이브코딩이라면 야나두..?

그래서 클로드로 최소한의 시스템을 그리고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쓰기용 개인 대시보드였다. 항목별로 물어보고 하나씩 답을 쓰는 방식을 채택했다가 모두 버렸다. 아무리 봐도 전후로 넘기는 형태는 영 별로였다. 뭘 쓰고 있는지 까먹게 됐다.

그럼 손으로 해볼까? 손으로 직접 쓰고 사진으로 찍으면 문항별로 정리해주는 방식도 테스트해봤다. 구글폼 문서처럼 질문하는 부분이 있고 답마다 채워넣는 공간이 따로 있는 방식도. 이리저리 테스트를 해봐도 이상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문서를 켜놓고 가이드에 따라 하나씩 쓰는 것, 평소에 메모장 하나 켜놓고 써내려가는 느낌을 주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문서 전체에서 내가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분명하게 인식하는 클래식한 방식이 사실은 가장 듣기 편안한 방식이었던 거다.

1.구글독이나 노션처럼 문서 작업을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할 것
2. 하지만 너무 같으면 안되고 심리적으로 안전하고 편안할 것
3. 전체 내용이 쉽게 보일 것(앞으로, 뒤로 가서 읽는 UX는 좋지 않다.)
4. 쓰기는 컴퓨터에서 쉽게, 읽기는 모바일에서 쉽게 할 것
5. 쓰기를 보조하는 도구들이 편리하게 배치될 것
6 가이드가 섬세하지만 눈에 너무 띄지 않을 것 등.

일단은 기존에 내가 사용하던 시스템의 틀이 있는 상황에서 직접 구현 후 별로인 것들을 걸러내고 그 이유를 찾다보니 기준이 생겼다. 눈에 보이는 기준을 갖고 조금씩 빼고 얹는 과정을 조금씩 쌓아올리자 글을 쓰는 저널링 시스템이 완성됐다. 시스템 안에서 원하는 기능과 방향성이 분명하면 분명할수록 시간이 짧아지고 결과물이 좋아졌다.

오빠의 조언은 '유지 보수를 쉽게 할 것'과 '보안을 잘 챙길 것' 두 가지였다. 둘다 놓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덕분에 큰 도움이 됐다.

그 다음은 뭐지? 구글 폼으로 신청을 받던 것을 생각해보니 귀한 후기가 쌓이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로그인을 붙여서 신청을 받고 후기를 쌓자는 데 마음이 기울었다. 아주 간단한 랜딩페이지와 신청서, 쓰기 시스템과 후기를 모으는 기능까지 붙였다. 보다 보니 아이콘 통일성이 아쉬워서 아이콘을 바꿨다. 서로듣기 피드를 추가했다.. 다람쥐가 도토리 줍듯이 가다보니 멀리왔다. 처음에 구상하던 아이디어들을 어느 정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물론 아주 중요한 결제 연동은 완벽하게 마무리하지 못했고, 판매 페이지 정교화 등 남아 있는 일들이 있지만 그래도 당장 사람들이 쓰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걸로 됐다.

해보니 확실해진 게 하나 있다. 이제 세상이 정말 달라졌다. 원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고 유저들의 피드백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러니까 필요로 하는 것이 매우 분명한 상황이라면, 지금의 바이브코딩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엄청난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이다. 야나두..!

나를 듣기 · 길잡이 김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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