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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9일

공감해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서운하다면

함께면서도 나로 사는 일

"너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들 이야기 듣지 마라. 집단에 끌려다니지 말라."

이런 메시지가 넘친다. 개별성의 시대다. 개성, 자신에 대한 책임감, 자기 결정의 중요성은 나날이 더 많은 매체에서 다뤄지고 있다.

또 한 축으로는 "뭉쳐야 산다!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처럼 연합성의 욕구도 있다. 연합성이란 유기체가 다른 유기체와 연결되고 의존하며 무리 지어 살아가려는 특성이다. 사랑, 충성심, 화목함, 질서라는 가치가 담겨 있다.

개별성과 연합성, 두 가지는 우리 안에 깊이 새겨진 욕구이면서 긴장 관계에 놓여 있어 양끝에서 우리를 잡아당긴다.

개별성

  • 의미: 독립된 개체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 감정, 가치관을 발전시키고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욕구

  • 역할: 관계의 압박이나 불안 속에서도 타인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자아분화의 핵심 기반

연합성

  • 의미: 가족이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친밀감, 소속감, 정서적 연결, 승인을 얻고자 하는 욕구

  • 역할: 집단의 일원으로서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협력하도록 도움

일반적으로는 더 진화한 생명체들일수록 연합성보다 개별성이 강해지지만, 인간이나 범고래의 경우 특이하게도 집단 조직화 능력이 무척 뛰어나다고 한다. 인간은 집단을 유지하는 장치를 매우 높이 진화시켜왔다. 의사소통 기술을 극도로 발전시켰고, 함께면서도 나로서 살아가는, 개별성과 연합성의 균형을 이루는 능력도 키워왔다.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집단적이며 연합성이 강조되는 사회다. 진화론적으로 연합성이 강한 종들의 특징은 적의 침입이 잦아 방어를 해야하거나 먹고 살기 위한 활동에 무리지어 협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전쟁과 침략이 끊임없고 국난을 극복한 경험이 얼마지 않았다. 오래도록 이어온 쌀농사도 집단주의적 문화를 심는데 일조했으리라. 밀농사에 비해 훨씬 함께 협력해야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결핍이 크면 욕구가 고인다고, 사회심리학적으로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은 주체성, 개별성을 그 어느때보다 원하고 있다. "나로서 살고 싶어!" 어떻게 집단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개별성을 균형있게 추구하며 살아갈지가 과제다.

공감해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서운하다면

갓 태어난 아기는 생존을 위해 의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한때 내 욕구를 타인이 백 퍼센트 채워주는 시기를 거쳐왔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이 의존의 욕구가 남아서 우리 삶을 좀먹기도 한다. 부모님이나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해소되지 못한 의존 욕구를 성인이 되어서도 주변 사람들을 통해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나를 인정해주고 알아봐주고 사랑해줬으면 하는 갈증이 일어나, 관계에 불안감이 커지고 때론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본질적 의존의 욕구가 자꾸 고개를 드는 상황이 바로 불안할 때, 힘듦이 찾아왔을 때다. 불안해지고 마음의 고통이 가중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은 연합성의 욕구가 강하게 나타난다. 물론 그때 적절하게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행운이겠지만, 여러 이유로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거절의 제스처가 있을 때 내쳐진 듯한 기분이 들고 무기력해진다면, 그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통제하는 것이다.

성인이 된 우리가 타인을 통해 나의 욕구를 백퍼센트 채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게다가 그런 방식은 우리 자신의 행복과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를듣기를 리딩하면서 가장 많이 들리는 감정 중 하나가 서운함이다. 힘들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지지적이지 않은 반응에 서운함을 느끼고 때로는 그게 마음에 생채기로 남는 거다. 이때는 주변 사람에게 나의 힘듦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슬픔에 집중하는 대신, 주변 사람에게 손을 뻗을만큼 힘들었던 원래의 감정에 노크해볼 수 있다. 진짜 중요한 마음은 처음부터 공감이 필요했던 그 마음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래 갖고 있던 불안과 고통, 그 감정의 뿌리를 잘 인지하고 보듬는 과정 없이는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나의 감정을 던지기 쉽다.

내가 나의 마음에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은 내가 내 마음을 듣고 끌어안아주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성인이 된 후로 우린 자립했을까

자아분화정서적 융합에서 벗어나, 감정과 사고를 분리하고, 타인과 독립된 자신만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친밀감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이다. 자아분화 수준이 높은 성인은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와 한 사람으로 나아간다. 아이와 가족은 하나로 사고하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연합성이 강했던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가족과의 분리를 어렵게 느끼기도 한다.

자아분화를 이루었다는 것은 부모와 자녀가 인격 대 인격의 관계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원가족에서 분리되어 자신만의 심리적 공간이 있어야 자기 존재로 삶을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다. 높은 자아분화를 이뤄낸 사람은 시시때때로 자신의 욕구, 자기 생각과 감정을 알고,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느며, 무엇을, 왜 하는지'를 말할 수 있다.

관계 안에서의 연합성과 개별성

1. 각자의 삶이 존중될 때 관계는 발전할 수 있다. 가족 관계가 건강하려면 개별성의 힘이 강한 것이 좋다. 개별성이 크면 가족의 불안은 낮아지고 구성원은 자율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보내는 감정적, 정서적 압력이 어떻든 자기가 결정한대로 나아갈 수 있다. 자동적 반응에서 벗어나 선택을 할 수 있다.

2. 관계 내 불안이 올라가면 연합성의 힘이 강해진다. 정서적 지지와 위안을 줄 누군가가 필요해진다. 연합성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숨이 막히고 나의 영역이 존중되지 않는 느낌이 든다. 반대로 개별성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외롭고 고립된 듯한 기분이 든다.

3. 단절은 연합성이 극도로 강해진 결과다. 연합성이 강하면 의존적이 되는데, 불안이 높아져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불안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관계를 멀리하고 단절을 선택한다.

4. 상대를 온통 자신과 연관지어 생각하고, 모두 자신의 탓이라거나 자신과 관계지어 생각한다면 연합성에 민감한 것이다.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민감하고, 타인의 반응에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은 상대방을 중심으로 자신이 맞춘다고 느끼지만, 다르게 보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5. 관계 내에서의 연합성과 개별성의 균형은 서로의 감정과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개별성이 약하면 상대의 우울이나 분노를 내 감정처럼 흡수한다면, 개별성이 강하면 상대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내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 개별성이 낮아지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생각하는 주체적 사고가 마비될 수 있으나, 두 가지의 균형이 잡히면 거절도 편안해지고 가까운 사람의 거절을 객관화하여 받아들이는 복합적 사고가 가능해진다.

6. 연합성과 개별성의 수준이 비슷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 쉽다. 연합성이 높으면 높은 사람과, 개별성이 높으면 높은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가 불안한 이유가 정서적 융합 때문일까?

'그냥 내가 참지'라는 신념으로 굳이 불편한 마음을 말하고 싶지 않아서 참는다. 하지만 상대가 성질내는 것을 볼 때면 속이 터지고, 불편한 감정 뿐만 아니라 행복한 감정도 억압하며 점차 표정이 사라진다. 좋은 관계를 위해 온힘을 쏟지만 그 모든 순간에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상대는 그를 볼 때마다 속을 모르겠고, 표정은 무덤덤할 뿐 별다른 반응이 없다. 상대는 그가 자신과 사는 것이 불행하고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입장과 상황에 대한 관점이 첨예하게 다르지만 소통이 되지 않아 오해만 쌓인다.

정서적으로 융합된 관계는

1. 누구의 감정인지, 누가 감정을 책임질 것인지 모른다

상대방의 기분, 불안, 우울이 거름망 없이 나에게 그대로 전염되어, 상대가 우울하면 나도 반드시 우울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 감정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불안한 날들이 많다.

감정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게 되면 자신의 감정 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까지 짊어지려고 애쓰거나 자신의 감정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한다.

감정을 책임진다는 것의 의미가 뭘까. 만약 내가 분노를 터뜨렸다면, 이후 상대방이 나에게 적개심을 품으며, 내게 실망해 거리를 두고 분노할 수 있다. 친밀한 관계가 깨질 수 있다. 감정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이것을 모두 인정하고 감당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감정과 행동, 그 후폭풍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상대가 분노를 제공했기에 자신의 분노는 정당하다 여기는 경우가 많다.

2.타인을 위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다

상대방이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 내 삶을 좌지우지한다.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대접을 하느냐에 행복이 달라진다.

융합은 타인을 위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이것을 희생과 헌신이라고 하며 배려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내면이 억압당하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3. 상대에게 바라는 게 많다

상대에 바라는 게 많다는 것은 자신의 경계가 약하고 불안이 높다는 의미다. 상대에 대한 집착은 강해지고 재촉이 심해질 수 있다.

4.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는데 사력을 쏟는다

분란과 싸움을 일으킬 것 같은 말과 행동을 피하는 것에 집중하느라, 정작 원하는 관계를 만들 에너지가 없다.

나의 관계와 그 안에서의 반응을 돌아보기

📍슬퍼할 때

분리된 상태: "많이 힘들겠구나"하며 정서적으로 곁을 지킨다

융합 상태: 상대의 슬픔에 휩싸여 내가 당장 해결해 줘야 한다고 불안해한다

📍의견 차이 발생 시

분리된 상태: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를 수 있지"라고 인정한자

융합 상태: 나쁜 기분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극도로 조바심을 낸다

📍선택의 기준

분리된 상태: 자신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결정한다

융합 상태: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한다

📍개인 시간 활용

분리된 상태: 각자의 삶과 경계를 기꺼이 존중한다

융합 상태: 분리되는 느낌을 버림받음이나 거절로 받아들인다

정서적 융합에서 벗어나 관계 안에서 나로서 바로 서기

이직을 위해 공부하는 상황에서 배우자가 요리를 하다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 소리가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만 같아 갑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화를 냈다. 이전에 갖고 있었던 죄책감과 관계에 대한 불안,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얽혀 분노로 쏟아져 나왔다.

1.오로지 자기를 변화시키는 데만 집중한다

1) 습관적 행동을 멈추고 가족들에게 쏟은 관심을 자신에게 돌려 자신에게 집중한다. 가까운 이의 문제나 그 문제의 해결 방식을 찾는 일을 할 때마다 인지하고 멈춘다. 가족 안에서 한 사람으로 존재하고자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융합이 일어나는 상대/가족의 원성을 듣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족들의 반대와 비난은 분화작업이 성공적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죄책감이라는 불안이 일어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2) 자신의 불안을 다룬다. 불안하면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인지한다. 상대의 어떤 면 때문에 그런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 때문에 자극을 받았는지, 그때 상대의 신호를 뭐라고 해석했는지, 상대의 감정에 자신은 어떤 대응을 하는지, 자신의 감정은 어떻게 변하는지 바라본다. 나에게 일어나는 감정에 초점을 두고 상대의 신호에 대한 나의 해석이 맞는지 확인한다.

2. 원가족들과의 관계를 다루기

정서적 융합이 일어난 대상이 나의 배우자이더라도, 원가족들과의 경험을 정리하고 심리 작업을 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관계가 시작된 곳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직접 원가족들과 나에게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수도 있다. 물론 가족들에게 도와달라거나 그들의 이해나 공감을 바라는 것은 분화가 아니다.

3.문제의 원인이라고 여겼던 것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한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문제가 비롯됐다는 것은 오해다. 이건 단지 가족들에게서 감정적 분리가 일어나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이 내가 느끼는 감정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인지하고, 지금 나에게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내가 믿고 있는 신념과 사고방식 자체를 인지하려고 노력한다.


보웬의 다세대 가족치료를 다루는 글입니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책 <쉽게 읽는 보웬 가족치료>, <보웬 이론의 8가지 개념>, <보웬의 가족 치료 이론>을 살펴보세요.

나를 듣기 · 길잡이 김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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